
내 탓이오 하는 겸손 (謙遜)
우리가 존경하여 마지않던 김 수 환 추기경께서 생전에 작은 차를 타시면서 차창에다
‘내 탓이오’라는 표어를 붙이고 다니셨다고 한다.
사람은 무슨 잘못된 일이 있거나 실수를 하게 되면 대부분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궁색한 변명을 하기가 쉽다.
‘내 탓이오’ 라는 흔쾌한 말은 세상을 따뜻하고 밝게 한다는 생각이다.
욕심이 과하면 추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한다.
전심전력을 다해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강한 존재가 되는 것은 권력자이거나 부자가 아니라 보석보다 빛이 나는 인품을 갖춘 인격자이어야 할 것이다.
조직의 신념이나 사상적 이념에 지나치게 매몰되면 품성이 거칠어지고 자기 잘못을 모르고 남의 탓으로 돌리면서 공격적으로 변 할 수 있는 게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특히 집단주의 내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인간적인 정으로 묶여있기 때문에 집단의 존속에 심대한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모든 과오는 정으로 감싸준다.
이런 집단 문화가 우리의 정당정치나 관료사회의 정신적 발전을 가로막고 있었다.
심지어 민의이 대변기관인 국회나 사정기관인 검찰에서도 이런 집단주의 현상을 볼 수가 있었다. 소위 내 식구 감싸기다. 이런 집단일수록 강력한 지도자가 흔들리거나 물러나면 곧바로 와해의 길을 가거나 중심을 잃고 만다.
거기다 바깥사회의 여론을 등에 업은 언론의 집중포화로 초토화 되어 재기 불능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이런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이합집산에 이골이 난 우리의 정당의 모습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지금 우리에겐 집단 문화의 폐해를 극복하고 바른 길을 찾아 앞을 보고 멀리 가는 법을 반드시 배워야 하는 시련기, 과도기가 도래해 있다.
슬기롭게 이런 시련을 극복하자면 김 수 환 추기경이 말씀하신 ‘내 탓이오’ 하는 마음 다잡기 운동 같은 것이 일어나서 우리 모두가 깨어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고 본다.
야합은 잘 해도 화합을 못하는 집단주의의 폐해는 이 쯤 해서 끝내고 모두가 새로운 길을 찾아 헌신과 희생의 자세로 지나친 욕심을 비우지 않으면 나라의 미래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집단주의에는 지역, 학연, 혈연이 다 포함된다. 우리말에 같잖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상대방이 영 맘에 안 들고 자기를 업신여기거나, 자기 말을 잘 듣지 않을 때 쓴다.
뭐든지 나와 같아야 좋고 다름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는 집단주의가 생산한 말이라 믿는다.
성씨문중이 숭조와 애종(친) 육영의 기치를 내 걸고 열심이지만 사람들의 눈과 귀에서는 거리가 멀다. 성씨문중이 배타적인 집단문화의 표본적 존재라는 잘 못된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개인주의로 해서 분화된 사회가 찾아오면서 우리의 정신적 기둥인 가족 사랑의 문화도 이제는 그 범위가 부모와 자식만으로 좁혀지고 있다. 연속극에서 대가족이 등장하는 것을 가끔 보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이게 문제다. 어떤 방식이나 제도로 던지 새로운 가족문화, 성씨문화의 전향적 발전모델을 창출해서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우리는 정체성도 희미하고 미래의 행복도 보장받지 못하는 잘 못된 집단 문화로 해서 하강사회로 추락하게 될지도 모른다.
가문의 영광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민족을 구성하는 모태로서의 성씨종중을 본체만체 하는 지금의 사회분위기가 과연 행복사회로 가는 시그널인가. 생각해 보자 다시 한 번.
-2017. 정유년 설날에- 楨 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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