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1233년~1291년) 자는 온독(韞匵)으로 시호(諡號)는 문경(文敬)이다. 어려서부터 총민(聰敏)하고 도량이 뛰어났으며 고종45년(1258) 장문한방(張文漢榜)에 급제하였다. 승선(承宣) 유경(柳璥)이 공과 최녕(崔寧), 원공식(元公植)을 천거하여 내시(內侍)에 속하게 하여 정사점필원(政事點筆員)이 되어 부하관원을 엄정 통솔점검하니 당시에 정방 삼걸(政房三傑)이라 했다. 이후 호부시랑(戶部侍郞)에 이르고 이부시랑 지어사대사(吏部侍郞知御史臺事)가 되었다.
10년간 20대왕 신종(神宗), 21대왕 희종(熙宗), 22대왕 강종(康宗) 실록(實錄)편수에 참여했고 1291년(충렬왕17) 첨의부중찬 태학사세자사(僉議府中贊太學士世子師)에 임명되었다. 공은 요직에 있기 15년간에 인물을 평론하되 항상 평범한 벗을 구제함을 뜻으로 삼았고 재상(宰相)의 지위에 있기 20여년간에 더욱 충성을 다하여 마침내 왕신(王臣)의 직분에 힘썼다. 인물을 간택함에 뛰어나 문하(門下)에서 배출된 현사(賢士)들이 모두 중요한 지위에 올랐으며 대각(臺閣:정승)에 재직하였다. 충선왕2년(1309) 충렬왕묘(忠烈王廟)에 배향(配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