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12-04 12:12
1585(선조 18)~1643(인조 21) 자(字)는 여시(汝試), 호(號)는 월봉(月峰), 형조 좌랑(刑曹佐郞) 난상(鸞祥)의 아들, 권필(權韠)의 문인. 1609년(광해군 1) 진사시(進士試)에 합격, 금화사 별좌(禁火司別坐)․한성부 참군(漢城府參軍)을 지낸 후, 1615년 부친상으로 사직했다가 그 후 광해군의 실정(失政)으로 벼슬을 단념, 면천(沔川)에 내려갔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의 해에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장원, 전적(典籍)․수찬(修撰)․장령(掌令)을 역임, 1627년(인조 5) 원주 목사(原州牧使)가 되었다.
이해 이인거(李仁居)가 난을 일으키자 그를 원주에서 체포, 난을 진압하여 소무공신(昭武功臣) 1등으로 풍녕군(豊寧君)에 봉해졌으며, 1632년 주청사(奏請使)로 명나라에 1638년 진주사(陳奏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후 형조 판서(刑曹判書)를 거쳐 좌참찬(左參贊)에 이르렀고,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