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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조씨] 조성환(曺成煥)

작성일 : 2019-09-10 13:51

1875(고종 12)~1948 일명(一名) 욱(煜), 호(號)는 청사(晴蓑), 서울 출신, 26세 때 무관학교(武官學校)에 입학하였으나 부패한 군부(軍部)를 숙청하려다 발각, 사형을 선고받은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복역 중 칙명(勅命)으로 3년만에 석방되었다.

그후 참위(參尉)에 임관되었으나 사직하고, 1907년(융희 1) 안창호(安昌浩)․이 갑(李 甲) 등과 함께 신민회(新民會)를 조직, 항일구국운동에 투신했다. 한일합방 후 대종교(大倧敎)에 입교하고 중국에 망명, 북경(北京)에서 중국혁명가 진기미(陣其美)와 한중공동전선(韓中共同戰線)을 펴 항일투쟁을 벌일 것에 합의했다.

1912년 일본 총리대신 가쓰라의 만주 방문을 게기로 암살하려다 실패, 거제도(巨濟島)에 유배되었다가 1년만에 석방되어 만주로 망 명했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 군무차장(軍務次長)을 지내고, 다시만주에 가서 서 일(徐 一)․계 화(桂 和) 등과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를 조직하여 군사부장(軍事部長)에 취임, 청산리(靑山里) 싸움 후에 독립운동단체가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으로 통합될 때 외교부장(外交部長)이 되고, 이어 신민부(新民府)를 조직, 외교위원장에 선출되었다.

그 뒤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감찰위원장을 거쳐 임시정부(臨時政府) 국무위원 겸 군무총장(軍務總長)으로 8년간 재직하고, 제2차 세계대전 말에는 임시정부의 군사특파원(軍事特派員)으로 서안(西安)에파견되어 중국 정부와 협의, 광복군 창설의 기초를 닦았다.

다시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최고통수부 판공처장(辦公處長)으로 있다가 해방으로 귀국,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위원장․성균관 부총재등을 역임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복장(複章)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