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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조씨] 조윤대(曺允大)

작성일 : 2019-09-10 13:47

1748(영조 24)~1813(순조 13) 자(字)는 사원(士元), 호(號)는 동포(東浦), 대사간(大司諫) 하망(夏望)의 손자. 명준(命峻)의 아들. 1779년(정조 3)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검열(檢閱)을 거쳐 1783년 초계문신(抄啓文臣)으로 선발되고, 부교리(副校理)가 되었다.

1787년 동부승지(同副承旨)․대사성(大司成)․이조 참의(吏曹參議)․대사간(大司諫)․대사헌(大司憲)을 지내고, 이듬해 경원 부사(慶源府使)가 되었다.

강화부 유수(江華府留守)․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를 거쳐 1798년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 1800년이조 참판(吏曹參判)을 역임, 1801년(순조 1) 형조 판서(刑曹判書)로서 진주사(陳奏使)가 되어 청나라에 가서 이해 신유박해(辛酉迫害)로처형된 중국(中國)인 신부 주문모(周文謨)의 전후사실을 보고하고 돌아왔다.

이듬해 수원부 유수(水源府留守)가 되고 1806년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대사헌(大司憲)․예조 판서(禮曹判書), 다음해 판의금부사 (判義禁府事)․이조 판서(吏曹判書)․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역임. 1811년 동지사(同知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 겸 우빈객(右賓客), 1813년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를 지내고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러 치사(致仕)했다. 명필(名筆)로 이름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