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9-10 13:40
1561(명종16)~1625(인조3) 자(字)는 여익(汝益), 호(號)는 매호(梅湖)․이재(怡齋), 우부승지(右副承旨) 계형(繼衡)의 증손, 몽신(夢臣)의 아들, 1588년(선조 21) 진사(進士)가 되고, 참봉(參奉)을 지낸 뒤 1650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승문원(承文院)을 거쳐 경성 판관(鏡城判官)이 되었다가 1621년(광해군 13) 제술관(製述官)으로 서울에 올라와 고궁 (古宮)의 황폐함을 보고 시를 지은 것이 백대연(白大衍) 등 이이첨 (李爾瞻) 일당에 의해 대역의 뜻이 있다는 무고를 받아 투옥당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 나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고, 이어 동부승지(同副承旨)를 거쳐 우부승지(右副承旨)에 올랐다. 글씨․그림․시에 능해 삼절(三絶)이라 일컬어 졌으며, 글씨는 특히진체(晋體)와 초서(草書)에 뛰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