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9-10 13:39
1558(명종 13)~1640(인조 18) 자(字)는 극원(克遠), 호(號)는 수죽(脩竹), 광복(光福)의 아들. 1579년(선조 12)에 진사(進士)가 되고, 1588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 한성부 참군(漢城府參軍)․사재감 직장(司宰監直長)․정언(正言)을 역임, 1590년 서장관(書狀官)에 임명되었으나 부친이 연로(年老)하여 사퇴했다.
1601년(선조 34) 병조의 좌랑(佐郞)에서 정랑(正郞)으로 승진, 1607년 탐학한 관리라 하여 파직되었다가 뒤에 형조 정랑(刑曹正郞)에 복직했다.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한 후 대북(大北)파의 전횡이 심해지자 사직하고 고향에 내려갔다가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영광군수(靈光郡守)에 보직되었으나 파직, 후에 등용되어 사섬시정(司贍寺正)․사도시정(司導寺正)․승문원 판교(承文院判校) 등을 역임했다.
1626년(인조 4) 정언(正言)을 거쳐,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고 이어 여주 목사(驪州牧使)로 나갔으나, 1628년 류효립(柳孝立)의 모반(謀叛) 사건에 연루되어 하동(河童)에 유배되었다가 혐의가 없음이 밝혀져 풀려 나왔다. 그후 후진 교육에 전심하다가 1637년(인조 15)노인직(老人職)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