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9-10 13:37
1545(인종 1)~1609(광해군 1) 자(字)는 사우(社友), 호(號)는 지산(芝山), 시호(諡號)는 정간(丁艱), 뒤에 문간(文簡)으로 개시(開始), 윤신(允愼)의 아들. 창원(蒼遠)출신. 이 황(李 滉)의 문하에서 성리학(性理學)을 연구했다. 1576년 (선조 9) 경상도 도사(慶尙道都事) 최 황(崔 滉)이 부임하여 군적(軍籍)을 정리할 때 검독(檢督)에 임명되었으나 친상(親喪)으로 사퇴하자 명령을 거부한다고 대노(大怒)한 최 항에 의해 토호(土豪)라고 상주(上奏)되어 강동(江東)에 유배되었다.
배소(配所)에서 계속 학문에 정진, 많은 후진을 양성하여 관서(關西)지방에서 학풍(學風)을 크게 떨쳤다. 15 92년 임진왜란 때 류성룡(柳成龍)의 청으로 풀려 나와 소모관(召募官)이 되고 군민(軍民)을 규합, 중화(中和)․상원(上元) 등지에서 전공(戰功)을 세워 녹비(廘 皮)를 하사 받았다.
그후 성주 목사(城主牧使)를 거쳐 1595년 안주 목사(安州牧使)가 되고, 이어 성천(成川)․정주(定州)의 목사를 역임한 뒤 사직했다.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다시 강동에서 의병을 일으켜 활약, 뒤에 선산 부사(善山府使)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사퇴했다.
죽은 뒤 이조 판서(吏曹判書)에 추증(追贈), 영천(永川)의 지봉서원(芝峰書院)과 도잠서원(道岑書院), 성천(成川)의 학령서원(鶴翎書院), 강동(江東)의 청계서원(淸溪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