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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조씨] 조식(曺 植)

작성일 : 2019-09-10 13:36

1501(연산군 7)~1572(선조 5) 자(字)는 건중(楗仲), 호(號)는 남명(南冥), 시호(諡號)는 문정(文貞), 판교(判校) 언형(彦亨)의 아들. 삼가(三嘉) 출신. 어려서부터 학문 연구에 열중하여 당시 유학계의 대학자로 추앙되었다. 지리산(智異山)에 은거하며 성리학(性理學)을 연구, 여러 대가(大家)의 서적을섭렵(涉獵)하여 독특한 학문을 이룩했다.

성명(性命)을 닦은 후의 실행(實行)을 주장하고 경의(敬意)를 신조로 하여 반궁체험(反躬體驗)과 지경실행(持敬實行)을 학문의 목표로삼았다. 1552년(명종 7)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 이몽량(李夢亮)의 천거로 전생서 주부(典牲暑主簿)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고, 이듬해 사도시 주부(司導寺主簿)․단성 현감(丹城縣監)․상서원 판관(尙瑞院判官)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임하고, 이해 왕의 부름으로치국(治國)의 도리를 건의하고 돌아왔다.

만년에 두류산(頭流山) 덕산동(德山洞)에 들어가 학문 연구와 후진양성에 전념했고, 수차 조정에서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사퇴했다. 문하에서 김효원(金孝元)․김우옹(金宇顒)등 저명한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선조(宣祖) 때 대사간(大司諫)에 추증(追贈), 광해군(光海君) 때에영의정(領議政)이 더해졌다. 진주(晋州)의 덕천서원(德川書院), 김해(金海)의 신산서원(新山書院), 삼가(三嘉)의 용암서원(龍巖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