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9-10 13:35
1492(성종 23)~1573(선조 6) 자(字)는 회보(晦甫), 시호(諡號)는 충경(忠景), 우찬성(右贊成) 계상(繼商)의 아들. 1522년(중종 17) 생원시(生員試)에 합격, 1528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전적(典籍) 등을 지낸 뒤 1538년 장령(掌令)에 기용, 이어 예조 참의(禮曹參議)를 지내고, 1540년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와 이듬해 좌승지(左承旨)를 거쳐도승지(都承旨)에 승진했다.
판결사(判決使)․병조 참의(兵曹參議)를 거쳐, 1545년 명종(明宗)이즉위하자 공조 참의(工曹參議)가 되고, 이해부터 3년 동안 함경남․북도의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와 함경도의 관찰사(觀察使)를 역임하였다.
1548년(명종 3) 호조 참판(戶曹參判)이 되고, 대사헌(大司憲)․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평안도 관찰사․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를 역임했으며, 1555년 을묘왜변(乙卯倭變)때 경상도 도순찰사(慶尙道都巡察使)로 활약, 좌참찬(左參贊)․호조 판서(戶曹判書) 등을 거쳐 1558년 우찬성(右贊成)에 올랐다. 판중추부사(判中樞府使)로 156 1년 70세가 되자 치사(致仕)를 청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