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찾기

조상찾기

HOME > 조상찾기

[창녕조씨] 조위(曺 偉)

작성일 : 2019-09-10 13:30

1454(단종 2)~1503(연산군 9) 자(字)는 태허(太虛), 호(號)는 매계(梅溪), 시호(諡號)는 문장(文莊), 현감(縣監) 계문(繼門)의 아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 1474년 (성종 5)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검열(檢閱)․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를 지내고,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한 뒤, 1479년(성종 10) 영안도 경차관(永安道敬差官)이 되었다.

여러 차례 시제(試製) 장원하여 문명(文名)을 떨쳤고, 성종(成宗)의 극진한 총애를 받아 검토관(檢討官)․시독관(試讀官) 등으로 경연(經筵)에 나갔다. 지평(持平)․응교(應敎)를 거쳐 1485년(성종 16)에 노모(老母)를 봉양하려고 사퇴를 원했으나 허락되지 않다가 고향의 수령인 함양 군수(咸陽郡守)에 전임되어 선정(善政)을 베풀고 수차 표리(表裏)․녹피(鹿皮) 등을 상으로 받았다.

1491년(성종 22) 검상(檢詳)․장령(掌令)을 거쳐 이듬해 동부승지(同副承旨)․도승지(都承旨)를 역임, 1493년 호조 참판(戶曹參判)이 되고, 이어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로 나갔다.

1495년(연산군 1) 대사성(大司成)으로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가 되어「성종실록(成宗實錄)」을 편찬하였고, 이어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 부총관(副摠管)을 겸직, 1498년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귀국 도중, 때마침 일어난 무오사화(戊午士禍)로 의주(義州)에서 피체, 투옥되었으나 이극균(李克均)의 극간(極諫)으로 선왕 (先王)의 총신이라 하여 죽음을 면하고 의주에 장류(杖流)되어 배소(配所)에서 죽었다.

성리학(性理學)의 대가로서 당시 사림(士林)간에 대학자로 추앙되었고, 김종직과 더불어 신진사류(新進士類)의 지도자였다. 글씨를 잘썼다. 황 간(黃 澗)의 송계서원(松溪書院), 금산(金山)의 경렴서원(景濂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