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9-10 13:23
1413(태종 13)~1477(성종 8) 초명(初名)은 석문(碩門), 자(子)는 순보(順甫), 시호(諡號)는 공간(恭簡), 관찰사(觀察使) 항(沆)의 아들. 1434년(세종 16)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정자(正字)를 거쳐 집현전 부수찬(集賢殿副修撰)이 되고, 정언(正言)을 지낸 뒤 이조(吏曹)․형조(刑曹)․예조(禮曹)의 정랑(正郞)을 역임하고 지안산군사(知安山郡事)로 부임, 치적을 쌓아 홍주 목사(洪州牧使)가 되었다.
다시 관찰사의 추천으로 상호군(上護軍)․지형조사(知刑曹事)에 올랐고,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어 세조의 즉위에 공헌하여 좌익 3등공신(左翼三等功臣)에 녹훈(錄勳), 도승지(都承旨)에 승진했다. 1459년(세조 5) 창녕군(昌寧君)에 봉해지고, 이조 참판(吏曹參判)으로 주문사(奏聞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거쳐 1466년 우찬성(右贊成) 겸 호조 판서(戶曹判書)가 되었다.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난(亂) 때 병마부총사(兵馬副摠使)로 평정에 공을 세워 적개 1등공신(敵愾一等功臣)이 되고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領議政)에 올랐다.
이듬해 왕명으로 노사신(盧思愼)과 함께「북정록(北征錄)」을 편찬 했고, 예종(睿宗) 즉위 초 남 이(南 怡)․강 순(康 純)의 옥사(獄事)를 잘 처리하여 익대 3등공신(翊戴三等功臣)이 되었으며, 1471년(성종 2) 또 좌리 1등공신(佐理一等功臣)이 되었다. 1476년 부원군(府院君)에 진봉(進封), 이듬해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