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9-10 13:15
?~1353(공민왕 2) 시호(諡號)는 양평(襄平). 충숙왕(忠肅王)때 중랑장(中郞將)이 되었고, 충혜왕(忠惠王) 때 충숙왕․충혜왕 부자간의 불화를 극력 말렸으며, 충혜왕 초에 대호군(大護軍)으로 간신의 무리 송팔랑(宋八郞)․홍 장(洪 莊) 등을 잡아 문초하다가 도리어 그들의 무고를 입어 1332년(충숙왕 1) 제주 안무사(濟州按撫使)로 좌천되었다.
1343년(충혜왕 복위 4) 이 운(李 芸)․기 철(奇 轍) 등과 원나라에 있으면서 중서성(中書省)에 글을 올려, 충혜왕의 탐학 무도함을 극언하고 고려(高麗)를 원나라 영토의 일부로서 성(省)을 두어 백성들을편안케 할 것을 청했다.
1351년(충정왕 3) 찬성사(贊成事)가 되고 공민왕(恭愍王)이 원나라에 있을 때 시종(侍從)한 공으로 1352년(공민왕 1) 1등공신이 되어 좌정승(左定丞)에 올라 하성부원군(下誠府院君)에 봉해지고, 순성직절동덕찬화공신(純誠直節同德贊化功臣)에 녹훈(錄勳)되었다. 공민왕(恭愍王)의 묘정(廟廷)에 배향(配享)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