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9-06 15:12
1495(연산 1)~1535(중종 30) 자(字)는 효백(孝伯), 호(號)는 독암(獨庵), 팽(彭)의 아들. 1516년(중종 11)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520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주서(注書)를 거쳐 부수찬(副修撰)․정언(正言)․수찬(修撰)을 역임하고, 1524년 이조 정랑(吏曹正郞)에 추천되었으나 김안로(金安魯)의 반대로 취임하지 못했다.
1526년 지평(持平)이 되었다가 이해 이조 정랑(吏曹正郞)에 전임, 이어 장령(掌令)․사간(司諫)․전한(典翰)을 지낸 후 1531년 사섬시정(司贍寺正)을 있을 때 심정(沈 貞)의 일당이라는 김안로의 탄핵으로 파직, 과천(果川)에 내려가 학문을 연마했다. 1537년 김안로가사사(賜死)되자 신원(伸寃)되었다. 과천의 호계서원(虎溪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