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字)는 사원(士愿). 조선(朝鮮) 때 무예와 병법이 뛰어나 천거로 수어감(守禦監) 정(正)에 이르렀으며, 36세에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선전관(宣傳官)․호조(戶曹) 정랑(正郞)을 지냈다. 1587년(선조 20) 훈련원(訓練院) 주부(主簿)로 중시(重試)에 급제하고, 양지(陽智) 현감(縣監)으로 나가 선정(善政)을 베풀어 임기를 마치고 돌아오려 하자, 주민(州民)이 유임을 청원하여 1년간 더 근무하다 고향으로 왔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동생 덕검(德儉)과 의병을 규합하여 공을 세웠으며, 숙부(叔父) 복(服)이 의병을 이끌고 충주(忠州)에서 싸우다 전사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적진으로 뛰어가 시체더미 속에서 복(服)의 시신(屍身)을 찾아 장사(葬事)를 지냈다. 그 후 병조(兵曹) 참의(參議)에 증직(贈職)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