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字)는 여조(汝調), 호(號)는 송재(松齋).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조부모 슬하에서 자라면서 학업에 정진하여 문명(文名)으로 사림(士林)의 추앙을 받았고, 특히 조광조(趙光祖)와 막연한 사이로 장래가 촉망되었으나 대윤이 정권을 잡아 단경왕후 신비를 폐출하고 이어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사류가 화를 입은 것을 보고 벼슬할 것을 단념하고 고향(故鄕)으로 돌아왔다. 1541년(인종 원년) 군자감(軍資監) 봉사(奉事)에 제수(除授)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