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9-03 14:46
1571(선조 4)~1639(인조 17) 자(字)는 위도(衛道), 호(號)는 송죽당(松竹堂), 첨정(僉正) 응탁(應 鐸)의 아들. 1606년(선조 29) 진사가 되고, 1611년(광해군 3) 별시문 과(別試文科)에 장원, 여러 벼슬을 거쳐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 이조 참의 (吏曹參議)가 되었다.
박승종(朴承宗)․유희분(柳希奮)의 심복이라 하여 이이첨(李爾瞻)의 미움을 받던 중, 1616년(광해군 8) 한찬남(韓纘男)의 상변사건(上變事件 : 해주옥사)에 그 이름이 들어있어 절도(絶島)에 안치(安置)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풀려 나와 1631년(인조 9) 사신으로 심양(瀋陽)에 다녀와서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