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9-03 14:45
1563(명종 18)~1625(인조 3) 자(字)는 시회(時晦), 호(號)는 수몽(守夢)․설촌(雪村), 시호(諡號) 는 문숙(文肅), 진사(進士) 유성(惟誠)의 아들. 영의정(領議政) 이산보(李山甫)의 사위, 이 이(李 珥)․성 혼(成 渾)․송익필(宋翼弼)의 문인. 1583년(선조 16)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되고, 1587년에 감찰(監察)․형조 좌랑(刑曹佐郞)을 지내고, 1593년 황주 판관(黃州判官)으로 왜군(倭軍)을 격퇴, 그 공으로 중화 부사(中和府使)가 되었다.
수찬(修撰)․장령(掌令)․서천 군수(舒川郡守)를 역임, 1597년 정유재란 때 예조 정랑(禮曹正郞)으로 급고사(急告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후 사성(司成)이 되고, 수원 부사(水原府使)를 거쳐 이듬해 응교(應敎)로 필선(弼善)을 겸임, 이어 승지(承旨)․형조 참의(刑曹參議)․나주 목사(羅州牧使)를 거쳐 대사간(大司諫)에 이르렀으나, 1602년(선조 35) 성 혼(成 渾)의 문인이라는 혐의를 받고 종성 부사(鍾城府使)로 좌천되었다.
1606년 성주(星州)․홍주(洪州)의 목사(牧使)를 역임하고, 광해군(光海君) 즉위 초 예조 참의(禮曹參議)․대사성(大司成)․승지(承旨)․판결사(判決事)․대사간(大司諫)․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 등을 지냈다. 1612년(광해군 4) 도승지(都承旨)로 왕을 경연(經筵)에 자주 나가도록 했고1614년 공조 참판(工曹參判)이 되었다.
1617년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자원하여 양양 부사(襄陽府使)로 나갔다가 1년만에 사퇴,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대사성(大司成) 겸 동지경연(同知經筵)․원자 사부(元子師傅)가 되어 학제(學制)를 상정(詳定)했고, 여러 번 타직에 전임되었으나 언제나 대사성(大司成)을 겸함으로써 이 때부터 대사성을 겸직하게 하는 선례(先例)를 만들었다. 그후 대사헌(大司憲)을 거쳐 좌참찬(左參贊)․좌부빈객(左部賓客)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