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9-03 11:05
1702(숙종 28)~1769(영조 45) 자(字)는 미중(美仲), 호(號)는 지당(止當). 옥호자(玉壺子), 목사(牧使) 무(堥)의 아들. 1735년(영조 1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1742년 경상도의 양곡을 중앙으로 운반할 때 경상도 도사 (慶尙道都事)로서 특히 진휼사 종사관(賑恤使從事官)에 선발되어 양 곡 운반에 종사하다가 감진어사(監賑御史) 홍계희(洪啓禧)와의 의견 충돌로 싸워 파직을 당했다.
이듬해 기용되어 사관(史官)이 되고, 천집랑(贊輯郞)으로「속대전(續大典)」의 편찬에 참여했다. 정언(正言)․헌납(獻納)․장령(掌令) 을 거쳐 1747년 의주부유(義州府尹)이 되고, 좌부승지(左副承旨)에 이어 1763년(영조 39) 병조 참의(兵曹參議), 뒤에 대사간(大司諫)에 이르렀다. 문장과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어제(御製)의 편제(篇題)와 흥화문(弘化門)의 액(額)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