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9-03 11:04
1706(숙종 32)~1762(영조 38) 자(字)는 자우(子羽)․사서(士瑞), 호(號)는 남애(南崖), 시호(諡號)는 문헌(文憲),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 수기(壽期)의 아들, 우의정(右議政) 우량(羽良)의 동생. 1733년(영조 9)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737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시독관(侍讀官)․응교(應敎)를 지냈다.
1755년(영조 31)「천의소감(闡義昭鑑)」찬집당상(贊輯堂上)이 되었으며, 이듬해 제학(提學)을 거쳐 대제학(大提學)에 올랐다. 그후 호조․공조․이조․병조의 판서(判書)를 지내고 평안도 관찰사(平安道 觀察使)로 나갔다가 1761년 우의정(右議政)에 승진했다. 이어 좌의정(左議政)에 올라 왕의 탕평책(蕩平策)을 반대, 소론(少論)의 제거를 주장한 사직,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의 한직(閑職)에 전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