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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정씨] 정홍명(鄭弘溟)

작성일 : 2019-09-03 10:49

()는 자용(子容), ()는 기암(畸庵)․삼치(三癡), 시호(諡號)는 문정(文貞). 1616(광해군 8)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검열(檢閱)이 되고 정언(正 言)․헌납(獻納)․지평(持平)을 거쳐 이조 좌랑(吏曹佐郞)에 이어 이조 정랑으로 승진했다.

이듬해 임진왜란 때 소실(燒失)된 역대의 실록(實錄) 재간(再刊)에 참여했으며, 부교리(副敎理)를 거쳐 1607년 다시 이조 정랑(吏曹正郞)이 되었다. 광해군(光海君) 초 지령(持平)으로 임숙영(任叔英)의 과방(科榜) 삭탈을 반대, 여러 번 직간(直諫)했다. 1611(광해군 3) 집의(執議)․사간(司諫) 등을 지내고 겸보덕(兼輔德)․사인(舍人)․전한(典翰)을 역임, 1613년 승지(承旨)가 되었다.

1616년「선조실록(宣祖實錄)」편찬에 참여, 1618년 병조 참의(兵曹參議)에 이어 형조 참의(刑曹參議)를 거쳐 1621년 황연도 관찰사(黃延道觀察使)가 되었으며, 뒤에 강원도와 충청도의 관찰사(觀察使) 등을 지냈다.

1623년 인조(仁祖)가 즉위하자 도승지 (都承旨)로서 광해군(光海君) 때 제주(濟州)에 안치(安置)되었던 연흥부인(延興夫人)을 모시고 돌아와 인목대비(仁穆大妃)로부터 보검(寶劍)을 상으로 받았다. 1624 (인조 2) 회답사(回答使)로 일본에 건너가서 도꾸가와(德川家光)의 습위식(襲位式)에 참가, 이듬해 포로로 잡혀갔던 146명을 데리고 돌아와 공조 참판(工曹參判)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