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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정씨] 정유성(鄭維城)

작성일 : 2019-09-03 10:24

1596(선조29)1664(현종 5) 자(字)는 덕기(德基), 호(號)는 도촌(陶村), 시호(諡號)는 충정(忠貞), 박사(博士) 근(謹)의 아들. 강화(江華) 출신. 10세 때부터 외조부 황치경(黃致敬)의 문하에서 수학(修學), 1627년(인조 5) 강도 정시문과(江都庭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검열(檢閱)․춘추관 기사관(春秋館記事官)․주서(注書)․필선(弼善)․수찬(修撰)․집의(執義) 등을 지냈다.

1644(인조 22)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가 된 후 승지(承旨)․전라도 관찰사 등을 지냈다. 1649(인조 27)에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가 되고 대사간(大司諫)․대사성(大司成)․도승지(都承旨)․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를 거쳐 호조․예조․이조․형조의 판서(判書)를 지내고, 1659(효종 10) 우의정(右議政)으로 고부사(告訃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조 판서(吏曹判書) 송시열(宋時烈) 이 경성 판관(鏡城判官) 홍여하(洪汝河)의 상소로 사직하게 되자 그 부당성을 지적해서 왕으로 송시열의 사직을 만류케 했고, 대사성(大司成) 서필원(徐必遠)의 이조 참의(吏曹參議) 취임을 반대하여 이를 사임케 했다.

이때 사간원(司諫院)이 서필원을 적극 논구(論救)하자 사의(辭意)를 표명,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로 청나라에 다녀와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로 죽었다. 청빈(淸貧)을 가훈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