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8-30 11:44
1588(선조21)~1635(인조13) 자(字)는 덕여(德餘), 호(號)는 현곡(玄谷)․곡구(谷口)․대탄자(大灘子)․천용(天容), 관찰사 효성(孝成)의 아들. 1606년(선조 39) 생원(生員)․진사(進士)가 되고 1611년(광해군 3)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이듬해 주서(主書)를 거쳐 검열(檢閱)․봉교(奉 敎)․대교(待敎)등을 지냈다.
1613년 경망(經妄)하고 아첨을 잘 한다는 탄핵으로 파직당했다가 곧 대교로 복직, 오랫동안 사관(史官)으로 있었으며, 1615년 이이첨(李爾瞻) 등 대북(大北) 일당들의 비행을 사초(史草)에 기재하여 다시 파직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부수찬(副修撰)에 재등용되어 헌납(獻納)․교리(校理)․수찬(修撰), 1625년(인조 3) 보덕(輔德)․사간(司諫)․사인(舍人) 등을 역임. 이해 사가독서(賜暇讀書) 한 후 이듬해 집의(執義)로 문과중시(文科重試)에 을과(乙科)로 급제했으나, 국구 (國舅)인 그의 장인 한준겸(韓浚謙)의 덕택이라는 비난을 받고 취임하지 않았다가 1627년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고 다음해 예조 참의(禮曹參議)․대사간(大司諫)을 지낸 후 1631년 이조 참판(吏曹參判)이 되었다.
이해 죄인 이행원(李行遠)의 치죄(治罪)를 태만히 한 죄로 다시 파직, 1632년 대사간(大司諫)에 복직되었으나 척신(戚臣)이라는 논란으로 사직했다.
좌부승지(左部承旨)․부제학(副題學)을 거쳐 도승지(都承旨)를 지내고, 1634년 경기도 관찰사(京畿道觀察使)에 재직중 병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