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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진주정씨] 정경세(鄭經世)

작성일 : 2019-08-30 11:42

1563(명종18)~1663(인조 11) 자(字)는 경임(景任), 호(號)는 우복(愚伏)․일묵(一黙)․하거(荷渠), 초시(初諡)는 문숙(文肅), 개시(改諡)는 문장(文莊), 여관(汝寬)의 아들. 상주(尙州) 출신. 류성룡(柳成龍)의 문인. 1582년(선조 15) 진사 (進士)가 되고, 1586년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승문원 부정자(承文院副正字)로 등용된 뒤 검열(檢閱)․봉교(奉敎)를 거쳐 1589년(선조 22)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집, 공을 세워 수찬(修撰)이 되고, 정언(正言)․교리(校理)․정랑(正郞)․사간(司諫)에 이어 1598년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가 되었고, 광해군 때 정인홍(鄭仁弘)과 사이가 좋지 못하여 삭직(削職)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부제학(副提學)에 발탁되고,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대사헌(大司憲)을 거쳐 1629년 이조 판서(吏曹判書) 겸 대제학(大提學)에 이르렀다. 이듬해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로서「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편찬을 담당했다.

성리학(性理學)에 밝았고, 이기설(異氣說)에 있어서 이 황(李 滉)의 설에 반대하고 이 이(李 珥)의 설에 찬동했으며, 특히 예론(禮論)에 밝아 김장생(金長生) 등과 함께 예학파(禮學派)로 불리었다.

시문․글씨에도 뛰어났다. 찬성(贊成)에 추증(追贈), 상주(尙州)의 도남서원(道南書院), 대구(大邱)의 연경서원(硏經書院), 경산(慶州)의고산서원(孤山書院), 강릉(江陵)의 퇴곡서원(退谷書院), 개령(開寧)의 덕림서원(德林書院) 등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