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8-30 11:25
?~1504(연산군 10) 자(字)는 이신(而信)․겸부(兼夫), 시호(諡號)는 충절(忠節), 판윤(判尹) 척(陟)의 아들. 1474년(성종 5)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전적(典籍)․지평 (持平) 등을 거쳐, 1481년 경기도 경차관(京畿道敬差官)을 지내고 이듬해 부응교(副應敎)가 되었다. 1487년 시강관(侍講官)으로 쓰시마도 선위사(對馬島宣慰使)가 되고, 이듬해해주 목사(海州牧使)를 지낸 뒤, 1493년 좌부승지(左副承旨)에 재직중 해주 목사(海州牧使)를 지낼 때의 부정사실로 탄핵을 받고 파직, 부처(付處)되었다가 후에 다시 기용되어 승지(承旨)․직제학(直提學)을 역임하였다.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고, 1494년 성종이 죽자 3년간 수묘관(守墓官)으로 있었고, 호군(護軍)이 되어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로 효수(梟首)당했다.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이조 판서(吏曹判書)에 추증(追贈), 고향에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광주(廣州)의 귀암서원(龜巖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