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8-30 11:22
1390(공양왕 2)~1475(성종 6) 자(字)는 명지(名之), 호(號)는 정암(整菴)․창재(暢齋), 시호(諡號)는 공대(恭戴), 설(舌)의 아들. 1408년(태조 8) 생원(生員)이 되고, 1414년(태종 14)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교서관 정자(校書館正 字)를 거쳐 봉상시 주부(奉常寺主簿), 감찰(監察)을 지냈다. 예조 정랑(禮曺正郞)으로 검상(檢詳)을 겸직, 이어 사인(舍人)․전농시 소윤(典農寺少尹)을 거쳐 지승문원사(知承文院事) 등을 역임, 1444년(세종26)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가 되었다.
공조․호조․예조의 참의(參議) 등을 역임, 경창부윤(慶昌府尹)으로 1449년(세종 31)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예조 참판(禮曺參判)으로 양계지도(兩界地圖)를 찬진(撰進), 1454년(단종2)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거쳐 이듬해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가 되었다.
이해 세조(世祖)가 즉위하자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가 되고, 1463년 양성지(梁誠之)와 함께「동국지도(東國地圖)」를 찬진, 부사직(副司直)을 지냈다. 해서(楷書)와 전서(篆書)에 뛰어나 많은 새보(璽寶)와 관인(官印)의 글자를 썼으며, 또 전고(典故)에도 조예가 깊어 많은 의제(儀制)를 찬(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