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찾기

조상찾기

HOME > 조상찾기

[서산정씨] 정인경(鄭仁卿)

작성일 : 2019-08-29 14:41

1267(원종 8)~1305(충렬왕 31) 시호(諡號)는 양렬(襄烈), 신보(臣保)의 아들. 고종 말 몽고군이 침입하여 직산(稷山)․신창(新昌) 등지에 주둔하자 야습(夜襲)으로 전공을 세워 제교(諸校)가 되었다. 충렬왕이 세자로 원나라에 머물 때 호종(扈從)했고, 1269년(원종 10) 세자가 귀국하여 파사부(婆娑府)에 이르렀을 때 임연(林 衍)이 원종을 폐하고 안경공(安慶公) 창(淐)을 옹립한 사실을 보고하여 세자로 하여금 다시 원나라에 가게 했다.

1274년 충렬왕이 즉위하자 2등공신에 오르고, 고향 부성현(富城縣)이 서주군으로 승격되었다. 1279년(충렬왕 5) 장군(將軍)으로서 성절부사(聖節副使), 이듬해 정조부사(正朝副使)로 원나라에 다녀오고 1282년 친종장군(親從將軍)으로서 요동(遼東)․심양(瀋陽)에 파견되어 백성을 추쇄(推刷)했고 이듬해 대장군(大將軍)으로서 요양(遼陽)․북경(北京)에 가서 유민(流民)을 추쇄했다.

상장군(上將軍)을 거쳐 1290년(충렬왕 16) 원나라가 동녕부(東寧府)를 폐하고 제성(諸城)을 고려에 돌려 줄 때 공을 세워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에서 서북면 도지휘사(西北面都指揮使)․서경 유수(西京留守)가 되었다. 이해 합단(哈丹)의 침입 때는 서경을 버리고 도망해 왔으며, 1292년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에 올랐으나 몽고에 동녀(童女)를 바치기 위한 처녀 금혼령(禁婚令)을 위반하여 섬으로 유배되었다.

1299년(충렬왕 25) 판삼사사(判三司事)가 되어 정조사(正朝使)로 원나라에 다녀오고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를 거쳐 중찬(中贊)으로 은퇴했으며,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추성정책안사공신(推誠定策安社功臣)이 되었다. 성품이 부지런하고 정직하여 원나 라 황제로부터 일찍이 무덕장군․정동성 이문관에 임명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