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8-29 13:47
1783(정조 7)~1873(고종 10) 자(字)는 선지(善之), 호(號)는 경산(經山), 시호(諡號)는 문충(文 忠), 돈령부 도정(敦寧府都正) 동만(東晩)의 아들. 1802년(순조 2) 정 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가주서(假注書)를 거쳐 검열 (檢閱)․부응교(副應敎)․이조 참의(吏曹參議)․대사간(大司諫) 등을 지내고, 1821년 관서 위유사(關西慰諭使)로서 평안도의 민폐(民弊)를 조사 보고했다.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를 지내고, 1831년 동지사(冬至使)로 청나라에 다녀와 1837년(헌종 3) 예조 판서(禮曹判書)에 승진,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거쳐 1841년 우의정, 이듬해 좌의정(左議政)이 되 었다.
1843년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가 되고, 1849년 헌종이 죽자 영의 정으로 덕완군(德完君) 이원범(李元範 : 철종)의 영립(迎立)을 주장, 즉위케 했다. 그후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총호사(摠護使) 등을 지 내고, 관기(官紀)가 문란해지고 각처에서 민란(民亂)이 일어나자 암 행어사 제도(暗行御史制度)를 부활시키도록 건의했다.
1862년 궤장(几杖)을 하사받은 뒤 이정청(李整廳)의 총재관(摠裁 官)이 되어 삼정(三政)의 문란을 시정하려 했고, 1863년 철종이 죽자 원상(院相)이 고종이 즉위할 때까지 정사를 맡아보았고, 이듬해 실록 청 총재관(實錄廳摠裁官)이 되어「철종실록(哲宗實錄)」의 편찬에 참 여했다. 글씨에도 뛰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