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8-29 13:42
1722(경종 2)~1794(정조 18) 자(字)는 대수(大受), 호(號)는 양재(陽齋)․양암(陽庵)․원촌(源村), 시호(諡號)는 문안(文安), 우의정 치화(致和)의 5대손, 문상(文祥)의 아들. 이 재(李 梓)의 문인. 1730년(영조 6) 생원(生員)이 되고, 이듬 해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교리(校理)․부제학(副 提學)을 지냈다.
1761년(영조 37) 승지(承旨)로서 장헌세자(莊獻世子)의 서유(西遊) 를 왕에게 고하지 않은 죄로 삭직(削職), 그후 등용되었으나 1772년 당론(黨論)을 주장하여 북청(北靑)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풀려 나와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지내고 1776년 우의정에 승진, 1777년(정조 1) 좌의정이 되었으며 1781년 실록청총재관(實錄廳摠裁官)을 겸했다.
이듬해 동지사(冬至使)로 청나라에 다녀와 1783년 우의정이 되고, 이듬해 세자 사부(世子師傅)를 겸임하고, 1786년 영중추부사(領中樞 府事)에 전임했다가 1791년 영의정(領議政)으로 치사(致仕), 봉조하 (奉朝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