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8-29 13:29
1664(현종 5)~1737(영조 13) 자(字)는 시해(時諧), 지평(持平) 제선(濟先)의 아들. 1687년(숙종 13)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1704년(숙종 30) 유생(儒生) 160여 명과 연명(連名)으로 명나라 신종(神宗)의 사우(祠宇)를 건립할 것을 상소, 처음으로 궁중에 황단(皇壇)을 세우게 했으며, 참봉(參奉)․세마(洗 馬) 등을 거쳐, 금구 현령(金溝縣令)․김제 군수(金堤郡守)를 지냈다.
1719년(숙종 45)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장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고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었다. 1721년(경종 1) 신임사화(辛壬 士禍) 때 김해(金海)에 유배되었으나 1724년 영조가 즉위하자 풀려 나와 대사간에 등용, 이듬해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오 고, 1727년(영조 3)도승지(都承旨)․대사성(大司成)․대사헌을 역임, 이해 정미환국(丁未換局)으로 파직당했다. 후에 등용되어 평안도 관 찰사에 보직되고 예조 판서에 올라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