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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정씨] 정지화(鄭知和)

작성일 : 2019-08-29 13:18

1613(광해군 5)1688(숙종 14) 자(字)는 예경(禮卿), 호(號)는 남곡(南谷)․곡구(谷口), 영의정(領議 政) 광필(光弼)의 5대손, 이조 참판(吏曹參判) 광경(廣敬)의 아들. 1633년(인조 11)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1637년에 제릉 참봉(齊陵參 奉)이 되고, 이해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장원, 이듬해 부수찬(副修撰) 을 거쳐 세자시강원 사서 (世子侍講院司書)로서 볼모로 가는 세자를 모시고 심양(瀋陽)에 갔다.

돌아와 교리(校理)이조 정랑(吏曹正郞)응교(應敎)집의(執義)사인(舍人) 등을 거쳐 원주 목사(源州牧使)로서 선정을 베풀어 송덕 비(頌德碑)가 세워졌다. 1650(효종 1) 진주사(陳奏使)의 서장관(書 狀官)으로 청나라에 가서 세폐(歲幣)를 삭감시키고, 병조 참의(兵曹 參議)승지(承旨)대사간(大司諫)을 거쳐 전라도함경도평안도 의 관찰사(觀察使)를 역임했다.

1664(현종 5) 형조 판서에 특진, 1666년 동지사(冬至使)로 청나 라에 다녀와서 우의정에 올랐다가 1669년 예조 판서(禮曹判書)에 전 직하여 평안도 별시(別試)를 관장(管掌), 1674년 좌의정이 된 뒤 병 으로 한직(閑職)인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로 전임되었다.

이해 복상문제(服喪問題)로 제2차 예송(禮訟)이 일어나 대공설(大 功說 : 9개월)을 주장하던 서인(西人)이 화를 입자 송시열(宋時烈) 의 추죄(追罪)가 논의되자 이를 맹렬히 반대했다. 1679(숙종 5) 영 중추부사(領中樞府事)에 승진, 이듬해 다시 좌의정을 지내고, 1685년 병으로 사직,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