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8-29 13:17
1609(광해군 1)~1677(숙종 3) 자(字)는 성능(聖能), 호(號)는 기주(棋州), 판서(判書) 광성(廣成)의 아들, 영의정(領議政) 태화(太和)의 동생. 1628년(인조 6) 별시문과(別 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검열(檢閱)을 거쳐 충청도 암행어사(暗 行御史)로 나갔다.
1636년 세자시강원 보덕(世子侍講院輔德)으로서 봉림대군(鳳林大君 : 효종)을 심양(瀋陽)에 호종(扈從)했고, 1642년(인조 20) 동래 부사 (東萊府使)로 나갔다. 1657년(효종8) 형조 판서(刑曹判書)에 승진, 2 년 후 이조 판서로 원접사(遠接使)가 되어 청나라 사신을 맞았고, 이 해 병으로 사직했다가 1667년(현종 8) 우의정(右議政)에 특진, 동지 사(冬至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오고 이듬해 좌의정에 올랐다.
1675년(숙종 1)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문제(服喪問題)로 서인 (西人)이 몰락하자사직을 청했으나 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어 11번 째의 사직상소로 사임하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서인(西人)이 었으나 온건하여 화를 입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