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8-29 13:08
1571(선조 4)~1625(인조 3) 자(字)는 익지(翼之), 호(號)는 휴옹(休翁)․휴헌(休軒), 시호(諡號) 는 충정(忠貞), 시정(寺正) 사신(思愼)의 아들. 1589년(선조 22) 생원 (生員)이 되고, 1597년(선조 30)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검열(檢閱)․봉교(奉敎)를 거쳐 이듬해 주서(注書)가 되었다.
사서(司書)․예조 좌랑(禮曹佐郞)을 거쳐, 정언(正言)에 올라 정인 홍(鄭仁弘)이 성 혼(成 渾)을 탄핵하자 이를 극력 변호, 정인홍을 공 격하다가 단천 채은관(端川採銀官)으로 좌천, 이어 어천도 찰방(魚川 道察訪)을 지냈다. 1608년(선조 41) 세자시강원 문학(世子侍講院文 學)․수찬(修撰)․응교(應敎)를 역임하고, 1612년(광해군 4) 성천 부 사(成川府使)를 거쳐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페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이를 극력 반대, 극간(極諫)하 다가 진도(珍島)에 유배, 이어 종성(鍾城)․광양(光陽) 등지로 이배 (移配)되었다. 인조반정(仁祖反正 : 1623) 후 풀려 나와 동부승지(同副 承旨)․대사간(大司諫)․부제학(副提學) 등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나가지 못했다. 글씨에도 뛰어났다. 진도의 봉암사(鳳巖祠), 종성의 종산서원(鍾山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