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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정씨] 정언신(鄭彦信)

작성일 : 2019-08-29 12:56

1527(중종 22)1591(선조 24) 자(字)는 입부(立夫), 호(號)는 나암(懶庵), 예조 좌랑(禮曹佐郞) 진 (振)의 아들. 1566년(명종 21)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 제, 검열(檢閱)이 되어「명종실록(明宗實錄)」편찬에 참여했고, 그후 전라도 도사(全羅道都事)․헌납(獻納)․장령(掌令) 등을 지냈다.

우부승지(右副承旨)에 이어 경기도 관찰사(京畿道觀察使)를 역임, 1583년 니탕개(尼湯介)가 쳐들어오자 우찬성(右贊成)으로서 도순찰사 (都巡察使)를 겸하여 막하로 이순신(李舜臣)신 입(申 砬)김시민 (金時敏)이억기(李億祺) 등 뛰어난 무관(武官)들을 거느리고 적을 격퇴했다.

이어 함경도 관찰사로서 북변을 방비하고,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승진, 1589(선조 22) 우의정이 되어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후 그 잔당(殘黨)에 대한 옥사(獄事)를 다스리는 위관(委官)에 임명되었으 나 서인(西人) 정 철(鄭 澈)의 사주를 받은 대간(臺諫)으로부터 정여 립의 구촌친(九寸親)이므로 공정한 처리를 할 수 없다는 탄핵을 받 아 위관을 사직, 이어서 우의정(右議政)도 사퇴했다.

그후 정 철 등으로부터 계속 정여립 일파로 모함을 받아 남해(南 海)에 유배되었다가 투옥(投獄), 사사(賜死)의 하교가 있었으나 감형 되어 갑산(甲山)에 유배, 배소(配所)에서 죽었다. 문경(聞慶)의 소양 사(瀟陽祠)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