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8-29 12:53
1515(중종 10)~1588(선조 21) 자(字)는 길원(吉元), 호(號)는 임당(林塘)․상덕재(尙德齋), 영의정 (領議政) 광필(光弼)의 손자, 부사(府使) 복겸(福謙)의 아들. 17세에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538년(중종 33)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장원, 전적(典籍)이 되고, 이어 공조 좌랑(工曹佐郞)․정언(正言)․이조 좌 랑(吏曹佐郞)․중추원 도사(中樞院都事)를 지냈다.
1544년(중종 39) 이 황(李 滉)․김인후(金麟厚) 등과 함께 사가독 서(賜暇讀書)했고, 대사헌(大司憲)에 이어 예조 판서(禮曹判書)에 승 진, 대제학(大提學)을 겸하고 얼마 후 이조 판서가 되었다. 1567년 선조가 즉위하자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 다음해 경기도 관찰 사로 나갔고, 1572년 예조 판서․공조 판서(工曹判書) 등을 지냈다.
1581년(선조 14) 이조 판서에서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명종(明宗) 때 군신(權臣) 윤원형(尹元衡)․이 양(李 樑) 등에게 아부한 사람을 상신(相臣)에 앉힐 수 없다는 사헌부(司憲府)의 맹렬한 반대로 사직, 1583년 예조 판서를 거쳐 우의정이 되고 이듬해 궤장(几杖)을 하사 받았으며, 1585년 좌의정(左議政)이 되었다. 문장․시에 모두 능했고, 글씨는 송설체(松雪體)로서 이름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