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8-29 12:50
1495(연산군 1)~1546(명종 1) 자(字)는 중원(仲遠), 문화 현감(文化縣監) 유강(有綱)의 아들. 1519 년(중종 14)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했으나 이해 기 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자 조광조(趙光祖)의 문인(門人)이라 하여 등용되지 못했다.
이듬해 검열(檢閱)․전적(典籍)․강릉 훈도(江陵訓導)를 거쳐 공조 (工曹)와 형조(刑曹)의 좌랑(佐郞)을 역임하고, 김안로(金安老)의 배 척을 받아 곤양 군수(昆陽郡守)․경기도 도사(京畿道都事) 등 외직 (外職)으로 전전하다가 형조 정랑(刑曹正郞)․사간(司諫)․보덕(輔德) 을 역임했다.
1544년 인종(仁宗)이 즉위하자 집의(執義)․사간(司諫)․직제학(直 提學)․동부승지(同副承旨) 등을 지내고, 1545년(명종 즉위) 대윤(大 尹)으로서 을사사화(乙巳士禍)로 삭직(削職), 다음해 창성(昌城)에 안 치(安置)되었다가 사사(賜死)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