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8-29 12:49
1490(성종 21)~1522(중종 17) 자(字)는 응지(譍之), 호(號)는 소우(素愚), 인후(仁厚)의 아들. 1514 년(문종 9) 진사(進士)로서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정자(正字)․오위 사정(五衛司正)을 지내고 1516년 사가독서(賜暇讀 書)한 뒤 경연사경(經筵司經)을 거쳐 이듬해 정언 (正言)으로 있을 때 대사헌(大司憲) 이 행(李 荇)을 탄핵, 면직케 했다.
1519년 승정원(承政院)에 의해「성리대전(性理大全)」을 진강(進 講)할 능력이 있는 학자로 뽑혔으며, 이어 전한(典翰)이 되었으나 이 해 겨울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조광조(趙光祖)의 당으로 몰려 부여 (扶餘)에 유배되어 배소(配所)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