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8-29 12:05
1402(태종 2)~1487(성종 18) 자(字)는 효중(孝中), 중추원사(中樞院使) 흠지(欽之)의 아들. 1423년(세종 5)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426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가 되고, 이어 집현전 저작랑(集賢殿著作郞)․교리(校理)를 역임, 1441년 사섬서령(司贍署令)으로 전임하였다.
1444년(세종 26)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로 재직 중에 최만리(崔萬理)․신석조(辛碩祖)와 함께 한글의 제정을 반대하다 파진, 투옥되었다가 이듬해 풀려 나와 응교로 복직, 1446년 집의(執義)로 왕실의 불교숭상을 반대했다가 다시 파직되었다.
다음해 용서되어 직예문관(直藝文館)에 등용되고, 이해 문과중시(文科重試)에 급제, 집현전 직제학(集賢殿直提學)이 되고, 1449년 부제학(副提學)으로 춘추관 편수관(春秋館編修官)․수사관(修史官)을 겸직,「고려사(高麗史)」․「세종실록(世宗實錄)」․「치평요람(治平 要覽)」편찬에 참여했으며, 1451년(문종 1) 동부승지(同副承旨), 이어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대사헌(大司憲)․대제학(大提學)․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지냈다.
1453년(단종 1) 이조 판서를 거쳐 1455년(세조 1) 우찬성(右贊成)으로 좌익2등공신(佐翼二等功臣)에 녹훈(錄勳)되고 봉원군(蓬原君)에 봉해졌다. 이듬해 사위 김 질(金 礩)에게서 들은 성삼문(成三問) 등의 단종복위 음모를 고변(告變)한 공으로 부원군(府院君)으로 진봉(進封) 대사성(大司成)․대제학(大提學) 등을 겸직하고 우의정(右議政)에 올랐다.
1457년 좌의정(左議政)을 거쳐 이듬해 영의정(領議政)에 승진, 1462년 세자에게 왕위를 양도하도록 상소했다가 삭직(削職), 여산(礪山)에 부처(付處)되었으나 곧 용서받고 부원군에 복작(復爵)되었다.
1468년 예종이 즉위한 후 남이(南怡)․강 순(康 純)의 옥사(獄事)를 다스리어 익대3등공신(翊戴三等功臣)에 오르고, 1469년 성종이 즉위하자 원상(院相)이 되고 1471년(성종 2) 좌리2등공신(佐理二等功臣)이 되었으며 70세에 치사(致仕)를 청했으나 허락되지 않고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1475년 영의정에 재임했다가 1485년(성종 16) 사직했으며, 문장과 서예에도 뛰어났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부관참시(剖官斬屍)되었다가 중종 때 신원(伸寃)․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고, 성종의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