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8-29 12:02
1350(충정왕 2)~1418(태종 18) 자(字)는 중상(仲常), 호(號)는 운학재(雲壑齋), 시호(諡號)는 정절(靖節), 감찰대부(監察大夫) 양생(良生)의 아들. 1377(우왕 3) 문과(文科)에 급제, 전교부령(典校副令)을 지내고, 조선개국 후에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이 되었다.
1394년(태조 3) 왕명으로 한이(韓 理)․조서(曺 庶)․권홍(權 弘)․변혼(卞 渾) 등과 함께「법화경(法華經)」4부(部)를 금니(金泥)로 썼고, 1397년(태조 6)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가 되고 이듬해 정안군(靖安君 : 태종)의 막료로서 판교서감사(判校書監事) 겸 상서소윤(尙書少尹)을 지냈다.
정종 때 도승진(都承旨)․대사헌(大司憲), 태종 때 예문관 학사(藝文館學士)를 거쳐 중군총제(中軍摠制)․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공조 판서(工曹判書)․호조 판서(戶曹判書)․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계림부윤(雞林府尹)․개성 유후(開城留後) 등을 역임했다.
1417년(태종 17) 의정부 참찬(議政府參贊)으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 태조(太祖) 때 만든 각궁(角弓)을 수입해 왔고, 그 뒤 의정부 찬성(議政府贊成)이 되었으나 풍질(風疾)로 사퇴했다. 예서(隸書)․초서(草書)․전서(篆書)를 잘 썼으며 인품이 청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