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8-28 14:58
1675(숙종 1)~1721(경종 1) 자(字)는 숙수(叔脽). 이량(爾亮)의 셋째 아들. 남달리 총명하여 성년(成年)이 되기 전부터 성균관(成均館)에 들어갔으며 19세에 경악(經幄)의 석보(碩輔)가 되었다. 1720년(숙종 46)에 상의원 직장(尙衣院直長)에 이르렀으며, 4대신(大臣) 조태채(趙泰采)․김창집(金昌集)․이건명(李建命)․이이명(李頣命)과 이홍술(李弘述)․이우항(李宇恒)․윤각(尹 殼)․이취장(李就章)․백시구(白時耈)․김시태(金時泰) ․심진(沈搢)과 사인(士人) 김용택(金龍澤)․이희지(李喜之)․이천기(李天紀)․심상길 (沈尙吉) 등과 함께 종묘 사직(宗廟社稷)을 보호함에 생사를 가리지 않고 오직 의리(義理)로써 항거하다 화(禍)를 당했다.
1725년(영조 1) 4대신(大臣)의 충절과 5사인(士人)의 절개(節槪)가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나 칭송을 받았고, 1802년(순조 2)대사간(大司諫) 백사근(白師謹)의 상소로 사헌부 집의(司憲府執意)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