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8-28 11:31
신라(新羅) 때 무장(武將)으로 826년(흥덕왕 1) 좌복야(左僕射)로서 뛰어났고 특히 잠수술(潛水術)에 능하였다. 장보고(張保皐)와 함께 당(唐)나라에 건너가 무령군소장(武寧軍小將)이 되어 무예(武藝)로 이름을 떨치다 귀국, 먼저 귀국하여 청해진(淸海鎭) 대사(大使)로 있는 장보고에게 의탁하고 있었다.
838년(민애왕 2) 장보고(張保皐)의 군사 5천 명을 거느리고 아찬(阿湌) 김우징(金佑徵 : 신무왕)을 도와 금명(金明)의 관군을 무찌르고 신무왕(新武王)을 세우는데 공을 세웠으며 그 후 장보고의 뒤를 이어 청해진(淸海鎭)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