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2-13 14:42
1582(선조 15)~1623(인조 1) 자(字)는 신백(信伯), 준남(俊男)의 아들. 1613년(광해군 5) 유생(儒生)으로서 이이첨(李爾瞻)․정인홍(鄭仁弘)의 사주(使嗾)로 이위경(李偉卿)과 함께 폐모론(廢母論)을 주장했다. 1615년 생원(生員)․진사 (進士) 양시(兩試)에 합격, 같은해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검열(檢閱)을 거쳐 이듬해 대교(待校)가 되었고, 이어 예문관 봉교(藝文館奉敎)로서 세자시강원 설서(世子侍講院說書)를 겸임했다.
1617년 정언(正言), 이듬해 겸문학(兼文學)․이조 정랑(吏曹正郞)․응교(應敎)․장악원첨정 겸 필선(掌樂院僉正兼弼善)․겸보덕(兼輔德)을 역임, 이해 홍문관 전한(弘文館典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