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07 15:03
호는 석음와 후망의 아드님 송우암과 동향으로 일찍이 우암께서 공의 자품을 사랑하시고 자손들과 같이 가숙에서 배우게 했다. 오랫동안 문하에서 보고 배워 성취한 것이 많으셨고 숙종 22년 사마시급제 순안현령 동 31년 알성문과에 장원 지평으로 계실 때 숙종께서 전위의 교가 계시어 등대간쟁하실 때 음성이 매우 크다보니 성상께서 저사람이 누구냐고 물으시니 좌우에서 교악입니다. 하고 말했다고 한다 드디어 하교를 거두게 하시니 공의 힘이 컷다한다.
동37년에는 이방언과 함께 최석정을 공척하여 관작을 삭탈케 하고 그의 저서 예기류편을 불사르게했다. 유생 곽경두가 최석정의 유배를 상소하자 왕의 진노를사 홍우선 이택등과 이를 옹호 하셨다가 안주로 유배되시기도 했고 그후 정언,황해감사, 충주목사 수원부사를 역임하시고 청나라에 동지부사로 다녀와서 다시 대사간 승지가된 얼마 후 소론 윤증일당이 노론을 탄압하고 우암의 사원을 철폐하자 이를 듣고 통변 하였으나 도리어 화를 당하여 경산,동래등지로 류배되셨다.
그후 풀려 영조원년 승지의때이다. 정유가 토역의 소를 올렸는데 성상의 진노가 매우커 정을 면박 하시면서 책상머리의 기물을 깨고. 상소문을 내던지신다 하니 좌우에 시립한 조신들도 모두 떨고 얼굴빛이 없었은나 공만은 태연하여 안색하나 변하지 않고 손수 상소문을 주워 올리면서 간절한 간을 거듭하여 드디어 성상을 감오케 하였다 한다. 그 후 동지의금 한성부우윤 도승지 형,예조참판 대사헌등을 지내시고 동3년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재기용되자 삭출되여 고향에 내려와 계시다가 동4년 소론파인 이인좌의 난이나자 울분심화 끝에 66세로 하세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