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07 15:02
쌍곡공의 장남 호는 백치 음직으로 용강현령 으로 계실때 지방 세도들이 많아 관의 령이 서지 않고 백성들이 여기에 붙어 도망가 숨는자가 많았다.
공께서 이를 아시고 세도들의 압력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단호히 이를 조치하여 바로 잡았다.
광해군10년 정시문과에 급제 장령이 되시어 시관 김윤 임건등의 비행을 탄핵하여 파직케 하고 지평을 거처 인조2년 명장 모문용이 병력5천을 이끌고 후금을 막는다는 구실로 함흥부를 침공하자 조정에서는 공을 접빈 유격장군으로 삼아 이들의 진격을 막게했다.
대임을 맡은 공은 임기응변의 계책을써 남하를 저지하고 무사히 책임을 완수하여 한국 전사상 유격장군으로 손꼽히게 되셨다. 인조10년 내첨사정 으로 계실 때 춘향친제에 불참한 허물로 그만두셨다가 그 후 종묘 서령 영흥부사를 지내시고 고향에 돌아와서는 70세된 고향친구 4인과 더불어 57계를 만들어 여생을 즐기셨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