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07 15:02
호는 쌍곡 선조 신축문과에 장원하고 광해조 11년 대사간이 되었으나 이때 경상,충청,감사들이 올린 진찬장에 이미 폐위된 인목대비의 존호를 쓴사실을 묵인 했다 하여 대북의 탄핵을 받자 자진 사퇴 하여 논쟁을 멋게 하고 이때부터 대각에 들기를 좋아하지 안했다.
그후 승지와 병,예조참의등을 지내셨고 특히 인목대비의 유폐를 보고서는 벼슬 하기를 낙락치 않게 생각 하셨다. 천성이 중후청근 하시고 고을을 맡아 치적이 많아 이름이 났다.
워낙 성품이 곧아 당시의 대세도였던 대북파의 영수 이이첨과는 척분간 인대도 조금도 아부하거나 위협에 굴하는일이 없이 오직 소신에 따라 시비가 분명하고 청렴하여 란세의 완인으로 조신들의 존경을 받았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