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07 15:01
중종33년 용인시 포곡면 신원리에서 태여나고 명종13년 무과급제 선조16년 니탕개가 북변의 경원을 공격하자 그는 경원부사에 특배되어 주야로 달려가 임지에 당도했으나 종성마져 포위되었다.
방비에 책략을 다한 결과 드디어 번호 스스로 철수 하였다. 선조17년 니탕개가 다시 2만여 대군으로 회령을 침공하자 회령부사로 발탁되어 그소굴을 습격하여 소탕하는등 크게 공을 세웠다. 선조19년 북병사에 오르고 동21년 대군으로 시전번호의 본거지를 처서 그를 항복시킴으로서 이때부터 북변이 무사 안정케 되었다 한다.
특히 사람을 보시는 눈이 남달라서 이무렵 조산만호였던 이순신이 군법에 저촉되어 중죄로 다스리게 되었을 때 평소 그의 충용함을 아시는 공께서 이를 계청하여 백의종군케 한바 있어 뒷날 수군통제사가되어 이충무공이 나라를 구할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공은 자헌대부 무용대장 개성유수 한성부판윤 지중추부사겸 지훈련도총관 공은무과급제후 선전관을 위시해서 칠부사 이첨사 전라좌수사 평안도 병사를거쳐 선조33년 남병사가 되셨으나 병으로 정평에서 향년64세로 하세 하였다. 그후 의정부 좌참찬이 증직 되고 경종때 장양의 시호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