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06 11:50
1869(고종 6)~1938 독립운동가. 일명 유흠(維欽)․천민(天民), 자(字)는 좌현(佐顯), 호(號)는 고광(古狂), 내금위장(內禁衛將) 민하(敏夏)의 아들.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에 민비(閔妃)가 시해되자 홍주(洪州)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897년(광무 1) 육군 참위(參尉)를 거쳐 헌병대장 서리를 지낸 후 사직, 1904년 고향에 내려갔다.
이듬해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의병 모집을 협의, 1906년 민종식을 대장으로 삼고 참모장이 되어 홍주(洪州)에서 싸우다 피체, 종신유형(終身流刑)을 당했다가 풀려 나왔다.
1908년 동생 창영(昌永)과 성명학교(誠明學校)를 설립, 교장으로 후진 교육을 담당했고 이듬해 항일운동을 벌였다. 한일합방 후 만주로 망명하여 대종교(大倧敎)에 입교, 상교(尙敎)가 되었으며 신흥무관학교 교장․통군부(統軍府) 사령관․한교교육회(韓僑敎育會) 이사장․통의부(統義府) 군사위원장을 역임, 상해(上海)에 가서 임시정부 참모부 차장(參謀部次長)을 지내고, 사천성(四川省)에서 병사했다. 1963년 대한민국 건국공로 단장(單章)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