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5(인조 3)~1689(숙종 15) 자(字)는 계주(季周), 호(號)는 외재(畏齋)․송간(松磵), 시호(諡號)는 문충(文忠), 판서 식(植)의 아들. 송시열의 문인. 1662년(현종 3) 문과에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1674년에 대사성(大司成)으로 대제학(大提學)을 겸했다. 이해 숙종 즉위 후 서인(西人)으로서 제2차 복상 문제(服喪問題)로 숙청당한 의례제신(議禮諸臣)처벌의 부당성을 상소 했다가 파직, 이듬해 삭직(削職)당했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풀려 나와 이듬해 홍문관 제학(弘文館提學)이 되어「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의 편찬에 참여했다. 1684년 예조 판 서(禮曹判書)가 되어「사창절목(社倉節目)」을 지어 왕에게 바쳤으며, 이 해 좌참찬(左參贊)에 올라「선묘보감(宣廟寶鑑)」을 지어 올렸고, 1686년 우의정(右議政), 이듬해 좌의정(左議政)이 되었으나 병으로 사직, 판돈령 부사(判敦寧府事)로 있다가 죽었다. 문명(文名)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