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8-08-06 10:52
1476(성종 7)~1522(명종 7) 자(字)는 문중(文仲), 호(號)는 경재(敬齋), 사간(司諫) 의무(宜茂)의 아들. 1501년(연산군 7)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33년 김안로(金安老)에 의해 강진(康津)에 유배, 1537년 김안로가 제거 되자 풀려 나와 도원수(都元帥)가 되어 건주위(建州衛)의 야인 침범을 막았다.
1545년(명종 즉위) 우의정(右議政)에 올라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겸직, 이때 보익공신(保翼功臣) 1등으로 풍성부원군(豊城府院君)에 봉해지고, 좌의정(左議政)이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 갔으며, 1549년 영의정(領議政)에 이르렀고, 1551년 중풍으로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에 전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