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字)는 세형(世亨). 1502년(연산군 8)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지평(持平) 올랐다가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로 유배,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석방되어 복관(復官)되고, 여러 관직을 거쳐 1514년(중종 9) 부응교(副應敎), 이듬해 응교 (應敎)에 승진, 함경도 경차관을 겸임하여 변방의 국방상태와 민정을 사찰했다. 1518년 삭주 부사(朔州府使), 이듬해 대사간(大司諫)으로서, 조광조(趙光祖)의 축출과 형량과(賢良科)의 폐지에 앞장을 섰다. 이어 부제학(副提學)에 전직, 6개조의 시국 대책문을 올려 국정에 반 영케 했다.